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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e-Bridge에 2011년 1월에 전길남 교수가 기고한 글을 기반으로 틀을 잡았습니다. 내용이 채워지면서 기고한 글과는 충분히 차별성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연도별 역사 서술

1982년

1982년 5월 15일에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의 컴퓨터와 구미의 전자기술연구소 (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컴퓨터를 1200bps 전용선으로 연결한 SDN(Sytem Development Network)이 현재 인터넷과 마찬가지로 TCP/IP를 사용하였으므로 한국 인터넷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1983년

SDN은 1983년 8월에 UUCP (Unix-to-Unix Copy)를 사용하여 네덜란드의 MCVAX 컴퓨터를 통해 유럽의 EUNET에 연결되었고, 같은 해 10월에 미국의 HPLABS 컴퓨터를 통해 UUCP Net에 연결되어 1200bps의 전화선을 통해 전자 우편을 교환할 수 있었다. SDN은 1984년 12월에 CSNET과 연결되었지만 미국 정부의 ARPANET 접속 제한 정책에 의해 FTP 서비스 등은 사용할 수 없었고, 전자 우편 서비스와 USENET의 뉴스 서비스만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국제 전화 회선 사용료 부담으로 USENET 자료를 복사한 마그네틱 테이프를 우편으로 수신하여야만 했다.

1983년 7월 '행정전산망', '금융전산망', '교육·연구전산망', '국방전산망', '공안전산망'을 포함하는 '국가5대기간전산망사업' 계획안이 수립되었고, 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법적 근거로서 1986년 5월 법률 제3848호 '전산망보급확장과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정부는 이 법에 의거하여 국가기간전산망사업 추진과 관련 정책의 심의·조정을 담당하는 '전산망조정위원회'를 설치하여 국가기간망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1988년 6월에 '교육·연구전산망'을 '연구전산망(KREONET)'과 '교육전산망 (KREN)'으로 분리하여 추진하기로 결정하였다.

1984년

1984년에 '한글메일'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한 데이콤은 1986년에는 '천리안'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이와는 별도로 1988년에는 '케텔' (나중에는 '하이텔'로 이름을 바꿈) 서비스가 나타나면서 이들 PC 통신은 많은 이용자를 끌어들였다. 비록 이들 서비스는 인터넷이 아니었지만 온라인 상에서의 '동호회' 개념을 만들어내어 이후 인터넷 이용 행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985년

1985년에 한글 전자 우편 프로그램과 한글 에디터인 hvi라는 프로그램이 개발되면서 SDN에서는 한글을 사용하여 전자 우편을 전송하고 수신하는 것이 가능하였다.

Asianet

1985년 PCCS에서 발표된 AsiaNet 구성도

1983년에 네덜란드, 미국, 그리고 한국 간에 구성된 네트워크를 시초로 하여, 이들 각각이 유럽, 미국, 아시아 지역의 컴퓨터 네트워크의 연결점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면서, 1985년에는 일본, 한국, 호주, 미국,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캐나다, 네덜란드 등을 아우르는 국제 네트워크인 'AsiaNet'가 구성될 수 있었다.

(고양우가 써넣은 글 -- 시작) 1985년에 전 세계적으로 컴퓨터 네트워크 관련 학술대회로서 처음 시도되는 국제 학술대회 중의 하나로 PCCS가 KAIST와 전자통신연구원 주최로 개최되었으며 이는 (고양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요약해서 여기에 쓰고) 하는 결과를 낳았다. (고양우가 써넣은 글 -- 끝)

1986년

1986년 7월에 최초로 국내 컴퓨터 네트워크에 IP 주소가 할당되었으며, 1987년에는 .kr 산하의 2,3단계 도메인에 관한 규격이 설계되어 한국을 대표하는 국가 코드 도메인인 .kr이 공식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kr 도메인 네임 서버로 KAIST에 있는 컴퓨터 등이 등록되어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kr을 도메인 네임으로 사용하는 컴퓨터들에 자유롭게 접속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1988년

인터넷이 사용 범위가 확장되면서, 국내 인터넷이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용될 수 있도록 관장하는 기구가 필요하게 되어 1988년에 대학과 연구소를 주축으로 하는 학술전산망협의회(Academic Network Council, ANC)가 구성되었다.

1990년

1990년 이전까지는 UUCP, CSNET, BITNET을 통하여 국제적인 네트워크와 연결하였지만 국제 회선이 패킷 단위 종량제여서 국제적인 인터넷 이용은 제한적이었다. 1990년에 (고양우: '이러 저러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런 식으로 간단한 설명이 붙어야 할 듯) PACCOMSDN/HANA망이 56Kbps 전용선으로 연결되어 (고양우: 'SDN/HANA망에 연결된 기관에서는' 이라는 말이 추가되어야 할 듯) 비교적 제한 없이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SDN oversea traffic 1991

1992년 2월 SG-INET에서 작성한 해외 통신 현황 분석 자료

1992년에 보고된 자료를 참고하면, 당시 인터넷 응용의 트래픽 점유 순위가 FTP, Mail, Telnet, Archie, DNS 순으로 나타나고 있다.

1991년

1991년에 ANC 산하의 TG-INET을 재정비하여 SG-INET을 구성하였으며, SG-INET에서는 네이밍, 라우팅, 한글, 보안 워킹그룹 등의 분과위원회를 구성하여 기술을 개발하고 도입하며 운영하는 활동을 수행하였다. 이러한 결과 네이밍 워킹 그룹에서 KRNIC을 설립의 기초를 제공하였고, 한글 워킹그룹에서는 국내 최초로 IETF (Internet Engineering Task Force) RFC 문서를 등록하였으며, 보안 워킹그룹에서의 CERT Korea를 구성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SG-INET에는 교육망, 연구망, KAIST,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충남대, 전산원, 데이콤, KT 등의 망 운영 실무진들이 활발히 참여하였다.

1992년

1992년 8월에 주요 게이트웨이 장비 및 HANA망과 SDN의 네트워크 운영 기능이 KAIST에서 한국통신(KT)로 이전되었다. 이후에 KT로 이관된 이후로부터 SDN은 국내망을 지칭하고, 국제 인터넷에 연결된 망을 HANA망이라고 지칭하게 되면서 SDN은 서서히 이름을 잃어가게 되었다. 1993년 ANC의 기술위원회에서 더 이상 SDN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1992년 국내의 인터넷을 대상으로 통합된 망 정보 관리 기능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ANC 관할 하에 '한국망정보센터(KRNIC)'이라는 기구가 만들어졌다. 이전까지 개별 네트워크별로 망 정보 관리 기능을 수행하여 왔고, ANC의 기술위원회가 국내 IP 주소 할당을 위한 조정 기능과 도메인 네임 등록 기능 등을 수행하였다. 국내의 인터넷 규모가 커지고, 세계적으로도 대륙별, 국가별로 망 정보센터를 설치하는 추세에 따라 한국망정보센터를 설립하게 된 것이다.

그 외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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